[한겨레] 한국에 들어선 도자기로 만든 산
<도자고개> - 스케일

[한겨레] 한국에 들어선 도자기로 만든 산

<도자고개> - 스케일

DATE 2011-01-21

3번 국도, 서울에서 이천으로 가다 보면 도자기 고장 이천을 알리는 이 구름다리가 등장합니다. 

구름다리 건물에 도자기 무늬를 넣어 이천을 알리는 조형물 구름다리인데, 좀 안타까운 수준입니다. 이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를 넘어서자마자 왼쪽으로 그동안 없었던 새로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원래 자전거 도로를 내려고 깎아낸 산허리 절개면이 처음 보는 모양의 조형물로 덮였습니다.

반대쪽에서 본 모습입니다. 산 지형을 따라 부드럽게 흐름을 이루는 조형물입니다. 생선 가시처럼 위아래로 지지대를 만들고, 그 위에는 도자기들을 붙인 이 조형물, 최근 도자기 도시 이천을 상징하는 새 랜드마크로 1차 완공된 `이천 도자고개‘란 작품입니다.

하필 제가 간 날이 우중충한 날이어서 맑은 날 찍은 전문가의 사진을 소개합니다.

역시 전문가 사진이 다르군요. 부드러운 융기의 느낌이 잘 살아납니다.

이 `도자고개’는 젊은 건축가 하태석(41, 아이아크 대표)의 최신작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절반의 완성입니다. 앞으로 공사가 더해져 최종 완성되면 이런 모습이 됩니다.

세부 디자인은 최종 과정에서 변했지만 기본 콘셉트는 그대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완공되면 길이는 100미터가 넘고, 건너편까지 건물에서 나온 구조물이 이어져 구름다리 역할을 하게 됩니다.

아직 건물 내부가 완성되지 않았는데, 최종적으로는 내부가 도예 갤러리 겸 전망대 역할도 합니다. 개념도를 보시지요.

이 이천 도자고개는 땅과 건물이 하나가 되는, 땅의 모양이 건물의 모양을 유기체처럼 흐르는 형태가 되는 랜드스케이프 건축, 유기체적 건축 경향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용도나 기능 면에서는 더욱 복합적입니다. 조형물이면서 건축물이란 점에서 경계를 넘는, 미술이자 건축인 작품입니다.

이 건물을 설계한 하태석씨는 영국에서 공부하고 2005년 귀국했습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활동한 기간은 5년여. 짧다면 짧은 기간입니다. 그동안 발표한 작품도 5개뿐입니다. 그럼에도, 그 실험성과 독특함으로 빨리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가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은 최고급 빌라였습니다. 엄청난 고가의 집을 해외 건축가와 국내 건축가가 파트너가 되어 설계한 작업이었는데 당시 청약 경쟁률이 680대 1에 이르러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본격적인 성향이 드러난 작품은 아이아크의 대표 건축가이자 한국 건축계의 중진 유걸씨와 함께 설계한 부산 용두산공원도시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설계 경쟁 공모에서 유걸씨와 하태석씨는 특이한 아이디어를 내세워 당선됐습니다.

용두산은 부산의 대표적인 명소입니다. 부산의 명물인 용두산 타워에선 날이 좋으면 저 멀리 쓰시마까지도 보이죠. 이 용두산 공원을 두 건축가는 저렇게 바꾸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아이디어는 이랬습니다. 용두산 공원은 명소이긴 하지만 부산의 기존 도시 조직과는 분리된 지역이었습니다. 산과 도시가 따로 노는 배타적 관계라는 것입니다. 산은 도시를 제한하고, 도시는 산을 갉아먹는 그 관계를 도시와 산이 모두 ‘윈-윈’하는 새로운 환경으로 만들자는 것이 저 계획의 콘셉트였습니다.

그리고 식물과 산 같은 자연환경이 인공 구조물인 건축물과 하나로 이어지고 공생하는 건축, 산처럼 생긴 빌딩이 솟아오르는 자연적인 모양으로 판을 갈자는 것이죠. 산 계곡에 광장을 고, 계곡 경사면에는 테라스를 달아 지중 지상이 혼재하는 녹색 공간 공원도시를 시도한 것입니다. 이 계획은 당선되었지만 사업이 취소되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건축가 개인에겐 무척이나 아쉬웠을 겁니다.

그 다음 하태석이란 건축가가 주목받은 프로젝트는 `버스 정류장’이었습니다. 시내버스 타는 그 버스정류장을 건축가의 아이디어로 새롭게 바꾸는 작업이었습니다.

서울 광화문 신문로 흥국생명 빌딩 앞에 들어선 이 버스 정류장은 만들어지자마자 명물이 되었습니다. 당시 서울시 도시갤러리 추진 사업 중의 하나였는데 유명 건축가에게 버스 정류장을 설계하게 해 새로운 디자인 시도를 선보이는 작업이었습니다.

버스정류장을 건축가가 한다는 게 새로울 수도 있지만 실은 외국에선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시민 대중들이 이용하는 가장 친숙하고 중요한 공간인 버스정류장을 가장 뛰어난 건축가들이 설계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지요. 실제 세계적 건축가들 중에선 피터 아이젠만 등 이렇게 독특한 모양의 버스 정류장을 설계한 이들이 제법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이 정류장과 그 맞은편 정류장이 건축가가 설계하는 첫 시도였습니다.

이 정류장은 특징이 ‘통합 디자인’한 공간이란 점입니다. 단순히 버스 정류장 구조물만 건축가가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조명, 난간, 의자까지 모두 통합된 콘셉트로 하씨가 디자인했습니다. 당시 하태석씨의 구상은 도시 속에서 살아있는 생물 같은 정류장이었습니다. 버스정류장이 수동적이고 고정된 그냥 시설물이 아니라 버스가 오면 빛이 들어오면서 버스를 반기는, 그런 친구 같은 정류장이란 거죠. 아쉽게도 당시만 해도 버스가 오는 것을 알려주는 정보망이 없어 그냥 조명이 들어오는 수준으로만 했습니다.

그 다음 하태석씨의 주요 작품은 한국 대표 건축가로 선발되어 참여한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작품이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미술행사로 꼽히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격년으로 열립니다. 홀수 해는 미술, 짝수 해는 건축으로 국가들이 각각 팀을 짜서 자기네 간판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지난해 한국 대표였던 하씨는 ‘미분생활 적분도시’라는 새로운 작업을 만들었습니다.

이 미분생활 적분도시는 사용자들이 직접 도시 계획에 참여해 정보를 보내면 도시가 그 정보에 따라 변하게 되는 프로그램입니다. 일종의 미디어 아트이기도 합니다.

도시에서 각 개인들의 삶은 저마다 다릅니다. 미분화된 생활이죠. 이들이 자기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요소를 선택해서 휴대폰 같은 정보기기로 쏘아주면, 프로그램이 이를 취합해 통계적 결과를 뽑아내고 그걸 건물의 배치나 크기 등에 변화를 주어 반영합니다. 미분화된 개인의 삶이 모여 적분화된 결과, 곧 도시 모양을 산출해낸다는 것입니다.

하씨는 이를 위해 전시장에 아이폰 등 단말기를 설치해 사용자들이 자기 삶의 각종 지표를 입력하게 했고, 또한 인터넷 등에서도 정보를 보내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에 따라 평면이던 곳에 건물이 솟아오르기도 하고, 길의 너비와 길이가 바뀌고, 동네가 비정형의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마치 아메바가 세포 분열하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줍니다.

이 프로젝트는 그래서 건축 작업이면서도 국내 다양한 미디어아트 행사에 초청받았습니다. 올해에는 서울대 미술관에서도 전시될 예정입니다.

이천 도자고개는 그 모양이나 결과는 전혀 다르지만 하태석씨의 전작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인 ‘미분생활 적분도시’와 아주 흡사합니다. 사용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그 결과가 관계를 설정하고 연동되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법론이 같습니다.

저 도자고개는 전체 디자인은 하태석씨가 했지만 개별 도자기들은 모두 이천의 유명 도요들이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양도 상당히 다양합니다. 접시도 있고 병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접시와 병에는 그림이나 글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천 시민들이 각종 체험교실 등에서 각각 그린 것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천 시민들과 이천 예술가들이 함께 참여한 집단 창조물, 집단지성의 공동 작품인 것입니다.

건축은 현대에 들어 그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건 건축이란 분야의 특성 때문입니다.

건축은 전문분야이면서 다른 전문분야와는 다른 조건이 붙습니다. 김인철 중대 건축과 교수는 그런 건축의 특성에 대해 “여러 전문성 중에서 건축만큼 일반의 보편적인 동의가 필요한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건축이란 개인의 것일 수 있어도 그 자체로 공익적이며 도시라는 거대한 삶터의 일부로 공공 공간 안에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건축가는 건물 하나만 예쁘게 지으면 되었습니다. 이제는 건축물이 들어서는 곳의 특성, 주변 건물들과 관계, 이용자들의 행태에 대한 고려, 그리고 디자인과 미술 등 관련 분야와의 연관성이 모두 요구됩니다. 이런 개별적이고 전문적인 여러 분야를 아우르고 종합하는 코디네이터로서의 건축가들의 역할이 요구되고 각광받습니다.

정보기술의 발전도 건축을 바꾸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들이 빠르게 건축에 접목되면서 건축은 형태와 용도 모두가 진화하고 있습니다. 건축이 아닌 저런 주거 응용 프로그램도 건축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하태석씨는 이전 세대 건축가들보다 활발하게 정보기술 등 테크놀로지를 활용하고, 미술 등 다양한 장르와 건축을 접목시키는 젊은 건축가들의 달라진 성향과 경향을 보여주는 이입니다. 이천의 저 도자고개는 보기엔 새로운 모양의 아이디어 조형물 같지만 저 역시 건축이며, 새로운 건축에 대한 고민과 시도를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글 / 구본준 기자, 사진 / 박영채 건축전문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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