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평(66㎡)을 100평(330㎡)처럼… 신통방통 정육각형
[건축가의 空間] [1] 하태석의 '헥사곤'

[조선일보] 20평(66㎡)을 100평(330㎡)처럼… 신통방통 정육각형

[건축가의 空間] [1] 하태석의 '헥사곤'

DATE 2013-09-12

정육각형 형태의 테이블… 공존하면서 독립적인 공간 연출 롤스크린과 프로젝터 이용해 회의실·영화관으로 변신

건축가에게 사무실은 자기 스타일을 농축해 보여주는 모형이다. ‘남의 공간’에는 시도 못 할 실험과 도전 정신이 구석구석 피어오른다. ‘일하는 공간’이라는 사무실 본연의 기능은 개성 있는 빛깔로 드러난다. 우리 건축의 작은 축소판이랄 수 있는 건축가의 각양각색 사무실을 연재한다.

땅값 비싼 서울에서 젊은 건축가가 자기 건물을 갖고 사무실을 운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비좁은 공간에 세들어 살며 작업에 몰두한다. 때로 이 열악한 환경이 건축가들의 실험 정신에 발동을 건다.

건축가 하태석(43·건축사무소 스케일 소장)은 아예 사무실을 ‘건축 실험실’로 삼는다. 하 소장은 지난해 서울 이태원 경리단 근처 평범한 3층짜리 상가 건물 꼭대기에 사무실을 얻었다. 면적 66㎡(20평)의 작고 허름한 공간. 실내 장식할 예산도 넉넉지 않았다. 좁은 공간을 넓게 쓰고, 비용도 절감하는 묘안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IT 기술을 공간에 접목하는 자신만의 건축 스타일도 살리고 싶었다.

‘헥사곤(Hexagon·육각형)‘이란 애칭이 붙은 하 소장의 ‘육각형 사무실’은 이런 악조건을 뚫고 탄생했다. 사무실 한가운데 한 변의 길이가 3.2m인 정육각형 형태로 이어진 긴 테이블이 놓여 있다. 직원 6명이 각자 한 변에 해당하는 테이블에 앉아 일한다. 위계적이고 네모로 쪼개 답답한 한국 사무실에 대한 반기란다. 하 소장은 “음악 밴드처럼 각자 역할을 하면서 조화롭게 일하고 싶어 사각 구조에 파격을 줬다”고 했다. 육각형 구조는 공존하면서 동시에 독립적인 환경을 만든다. 내각이 120도여서 다른 변에 앉은 동료의 컴퓨터를 볼 수 없다.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는 진짜 비밀병기는 각 테이블 위에 달린 롤 스크린과 천장에 붙은 6대의 프로젝터. 이 장치들은 하 소장이 직접 개발한 사무실 전용 앱과 연동해 움직인다. 앱을 작동시켜 롤 스크린을 열었다 닫고, 프로젝터를 켰다 끌 수 있다. 제 자리에 앉아 손가락 몇 번 까딱까딱하면 ‘빛’과 ‘움직이는 가림막’ 덕에 사무실이 자유자재로 변신한다.

하얀 롤 스크린을 ‘캔버스’로, 프로젝터의 화려한 빛을 ‘물감’ 삼아 직원들은 다양한 공간을 그려낸다. 강의실이 되기도 하고, 영화관이 되기도 한다. 영상 장치를 틀어 파티 장소로도 활용한다. 롤 스크린 3개를 내려 대형 화면에서 게임도 한다. 점심땐 육각의 스크린을 모두 덮고 그 중간에 둘러앉아 직원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 이름하여 ‘육각회담’. “20평을 100평처럼 쓴다”며 하 소장이 웃었다.

공간 실험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는 ‘친환경 오피스’를 표방하고 ‘에어컨 없이 살기’에 도전했다. 온도, 미세먼지, 습도, 풍력을 측정하는 센서를 사무실 여기저기 달았다. 창에 환풍기를 달고, 사무실 바로 위 옥상에 스프링클러를 달아 물도 뿌려대며 안간힘을 썼지만 결과는 참패. 폭염에 무릎을 꿇고 최신형 에어컨을 샀다.

그래도 도전은 멈추지 않을 모양이다. 다음 목표는 사무실 밖 간판을 앱과 연동시켜 행인들이 사무실의 상황을 간접 경험하게 하려 한다. 예컨대 마감이 임박했을 땐 빨간 불빛, 마감이 끝났을 땐 파란 불빛으로 하는 식이다. “간판을 통해 가변적인 공간 체험을 외부로 확장시키겠다 포부다.

건축가 하태석 미디어와 테크놀로지를 공간에 적용하는 ‘융합 디자인’을 추구해 건축가와 예술가의 경계를 넘나든다. 2010년 베네치아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사용자들이 앱을 통해 도시를 실시간으로 만드는 작품을 발표했다. 대표작 홍대앞 티켓라운지 ‘씬디’(2013년), 건축전 ‘미분생활 적분도시’(2010년).

김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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