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과학자·건축가·예술가 ‘삼위일체’
<자연과미디어에뉴알레> - 스케일 하태석 대표 총괄

[한겨레] 과학자·건축가·예술가 ‘삼위일체’

<자연과미디어에뉴알레> - 스케일 하태석 대표 총괄

DATE 2013-09-17

여름 더위는 여전해도 하늘은 조금씩 높아지던 지난주, 에메랄드빛 바다가 파랗게 펼쳐지는 제주 김녕마을에 여남은 명이 몰려왔다. 동네 네 곳을 골라 팀별로 삼삼오오 모인 이들은 저마다 저수지 물속에 뛰어들어 돌을 쌓고, 용접기로 쇠파이프를 연결하고, 제주 화산석을 꼬치 꿰듯 줄로 엮기 시작했다. 그렇게 뚝딱거리고 비행기로 실어온 것들을 설치하기를 이틀, 피서철이 지나 원래 모습대로 고즈넉해진 바닷가 마을에 14일 오후 묘한 구조물 네 개가 완성됐다. 나팔꽃 다발처럼 생긴 벤치, 알루미늄판이 돌아가는 네모난 상자, 파란 물이 담긴 동그란 플라스틱 병이 매달린 쇠그물 같은 철구조물, 그리고 물웅덩이에 섬처럼 솟아난 돌탑. 지난 1년 동안 추진되어 온 ‘자연과 미디어 에뉴알레 2013’의 성과물들이 오랜 토론과 협업 끝에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김녕마을에 들어선 이 공공조형물들은 그동안 한국에선 없었던 실험의 산물들이다. 건축가와 예술가, 그리고 과학자가 팀을 만들어 과학의 개념과 예술의 실험, 그리고 건축의 디자인을 결합해 제주 김녕이란 지역에 맞는 공공조형물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김녕 바로 옆에 위치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의 과학자들과 주목받는 젊은 건축가, 그리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로 인정받은 예술가들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에너지기술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자연과 미디어를 주제로 협업을 해 지역 마을에 설치하는 ‘융복합형 공공예술 프로젝트’다.

건축가 네임리스(나은중+유소래), 예술가 랜덤웍스(민세희+김성훈), 풍력발전 연구자인 곽성조 과학자는 풍력 발전에서 모티브를 얻은 ‘풍루’를 만들었다. 올레길 20코스 시작점에 들어선 풍루는 제주의 돌, 그리고 바람이 불면 돌아가는 알루미늄판을 엮어 바람을 통해 생기는 에너지를 형상화했다.

예술 실험·디자인에 과학원리 담아 1년여 협업 거쳐 공공조형물 완성 나팔꽃 벤치·풍루 등 네 작품 탄생마을에 새로운 이야기와 활력 생겨 쇠뿔처럼 굽은 나팔 5개를 묶어놓은 모양의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아래 사진)는 바람의 섬 제주에서도 바람 많기로 소문난 김녕 바람을 이용해 좁은 관을 통과하는바람의 풍량을 측정하고 기록하는콘셉트로 출발한 작품이다. 미디아티스트 에브리웨어(방현우+허윤실)와 유체물리 전공 김호영 교수가 애초 큰 확성기 같은 디자인에서 개념을 잡고 양수인 건축가가 이를 발전시켜 벤치로도 쓸 수 있는 형태로 완성했다.

바닷물이 들어와 고이는 웅덩이이자 바닥에서 담수가 솟아오르는 해변가 뚝방 안 물속에 세운 ‘탕’(위 사진)은 바닷물과 강물의 염분 농도차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염분차 발전’의 원리가 모티브다. 제주에서는 해안가에서 솟아나는 샘물인 용천수 주변을 돌로 쌓아 보호를 했는데, 이런 전통을 상징하는 돌탑을 쌓고 그 옆에 염분차 발전을 상징하는 빛이 들어오는 작은 분수를 달았다. 와이즈건축(장영철+전숙희)과 아티스트 박진우씨, 그리고 양현경 과학자의 합작품.하태석 건축가와 음악인 권병준씨, 그리고 해양바이오 학자 김대희씨가 만든 ‘사랑당’은 김녕마을의 관광 상품 개발까지 염두에 뒀다. 소원을 비는 ‘당’을 마을에 만드는 제주 당신앙에서 착안해 자체 발광하는 조류를 병에 넣어 조형물에 매달면사랑 소원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를 만들고, 우산살이 펼쳐진 것 같은 철제 구조물을 만들어 미세 조류를 담은 병을 달 수 있도록 했다. 미세 조류는 아직 실험중이어서 바로 상품화되지는 못하지만 추후 연구를 통해 현실화할 계획이다.

작품 자체는 지원금의 규모 때문에 덩치가 크지 않지만 새 방식의 조형물을 작은 마을에 맞게 추진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프로젝트팀과 이 작업을 함께 해온 김녕리 박윤보 이장은 “문화와 예술과 거리가 멀었던 작은 해안 마을에 이런 조형물들이 들어섬으로 해서 새로운 활력과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반갑고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구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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