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이달의 예술-건축 '권력과 건축, 다원화 시대를 위하여'
서울은 미술관 ‘단 한 곳, 단 한 점’ <푸른강의 전설> - 스케일

[중앙일보]이달의 예술-건축 '권력과 건축, 다원화 시대를 위하여'

서울은 미술관 ‘단 한 곳, 단 한 점’ <푸른강의 전설> - 스케일

DATE 2016-12-26

대통령 지지도가 5%로 추락하면서 여기저기서 ‘박근혜 지우기’가 시작됐다. 그분과의 인증샷을 내걸고 으스댔던 시장 가게들이 겸연쩍어하며 걸개를 내렸고, 기업들도 슬그머니 그 뒤를 이었다. 씁쓸하다. 권력에 기생했던 얄팍한 상술과 해바라기 변신술이 우리를 민망하게 한다.

한걸음 깊게 들어가 보면 이런 현상이 우리 도시 곳곳에 다양한 형식으로 스며들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우상화된 영웅상을 비롯해 권력을 표상하는 건축물, 위인을 기리는 거리와 도시의 이름 등이 권력의 부침에 따라 진설(陳設)됐다 철거되고, 도시의 아이콘으로 표방됐다가 걷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이들 상징물 대부분은 예술로 포장되기 일쑤다. 장황한 설명 없이도 직관적으로 인식될 수 있고, 기대치를 높이는 예술의 힘 때문이다. 거기에 건축이 앞장서 왔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건축은 항상 지배권력의 종속물로 존재해 왔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권력은 삶의 현장인 공간의 지배가 권력의 원천이라 여기고,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공간쟁취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건축가 하태석의 ‘푸른 강의 전설’. 메마른 도시에서 상상과 환상의 만남을 시도했다.

권력을 표상하는 건축은 대체로 스펙터클의 형식을 가진다. 인간을 넘어 신의 지위에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거대함으로 초월적 힘을 표상하며 요소들의 반복으로 영원성을, 절대도형으로 완전성을 은유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높은 곳에, 도시의 중심에 놓아 효과를 극대화한다. 시민을 우중으로 만들어 그것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관객의 입장에 서게 하여 그것이 정해준 삶에 적응토록 강요한다. 이들 스펙터클은 경탄이나 찬양으로 연결돼 예속(隸屬)의 도구가 된다. 로마의 황제나 히틀러 같은 독재자, 특히 정통성 없는 정치권력이 이러한 작업에 유난히 집착한다.

지난 13~14일 ‘서울은 미술관’이란 주제로 국제 콘퍼런스가 열렸다. 도시를 풍요롭게 만드는 예술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행사의 백미는 ‘단 한 곳, 단 한 점’이었다. 아티스트 22명이 초청됐고, 각각 나름대로 상상력을 발휘했다. 참여 작가들은 다양한 사유와 방법을 시도했지만 몇 가지 기본적 태도를 공유하고 있었다. 물리적 장소를 차지하는 형상보다 비물질적인 행위를 제안하기도 했고, 고정된 것보다 변화하거나 움직이는 것, 영구적인 것보다 한시적인 것, 규정적이기보다 상상력을 건드리는 것, 설득하기보다 시민들이 참여해 만들어가는 과정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태도는 이 시대, 우리의 사회가 일의적 시대정신이나 국가와 민족 같은 초월적·집단적 정체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우연과 다원화의 사회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징표다. 더불어 우리 사회가 표상 중심주의 건축과는 차원이 다른 건축, 대상화 수준을 넘어서는 건축을 요구하고 있다는 징후다. 동시대 예술가, 특히 건축가들이 한 번쯤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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